Heart 단편 소설 - 왕대야 사우나의 푸른 바가지는 두 번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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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한 생각의 시간/마초 문학

단편 소설 - 왕대야 사우나의 푸른 바가지는 두 번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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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내용



 

 

 

BGM

 

 

 

 

새벽 5시 11분.


동네 끝 상가 지하 1층, 왕대야 24시 불가마 사우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간판의 ‘왕’ 자는 불이 나갔고, ‘대야’만 푸르게 빛났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그곳은 그냥 대야 24시 불가마 사우나였다. 솔직히 그 이름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은 결국 왕이 되지 못해도 대야 하나쯤은 끌어안고 산다.

계단 입구에는 오래된 입간판이 서 있었다.

“남탕 수압 정상.”

그 아래, 누군가 매직으로 덧붙인 문장.

“하지만 인생 수압은 각자 관리.”

그 글을 쓴 사람은 사우나 사장 온두식이었다.

온두식, 59세.

왕대야 사우나 사장.

그는 흰색 반팔 러닝셔츠 위에 회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 등에는 커다랗게 ‘관리자’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관리자가 아니었다. 오래된 보일러와 곰팡이 낀 타일과 새벽 손님들의 한숨을 너무 많이 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두식은 남탕 중앙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온탕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온탕이었던 것이 있었다.

평소 온탕은 뜨겁고 묵직했다. 들어가면 허벅지부터 인생이 풀렸다. 그러나 오늘의 온탕은 달랐다. 이상하게 물이 얇았다. 온도는 41도였다. 숫자로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아니었다.

두식은 손을 담갔다.

뜨겁다.

그런데 깊지가 않았다.

그는 물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온도는 맞는데 마음이 없다.”

온탕 옆 벽에는 온도계가 붙어 있었다. 이름은 열받은 김대리였다. 두식이 직접 붙인 이름이었다. 온도계는 매일 정확하게 열받아 있었기 때문이다.

열받은 김대리는 41도를 가리켰다.

정상.

하지만 물은 정상이 아니었다.

탕 안에는 거품이 이상하게 한쪽으로만 모였다. 작은 거품들이 둥글게 돌다가, 탕 오른쪽 구석에 가서 계속 쌓였다. 마치 회의실에서 아무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문제들이 한 팀장 자리로 몰리는 것 같았다.

두식은 허리를 굽히고 그 거품을 봤다.

보글.

보글보글.

딱.

가끔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딱.

보글.

딱.

두식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누가 탕 안에서 박수를 치냐.”

그때 남탕 문이 열렸다.

드르륵.

첫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이름은 마춘삼.

53세. 새벽 생선도매상.

그는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수건 끝에는 ‘대방어는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수놓아져 있었다. 누가 수놓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문장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는 쉽게 웃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춘삼은 체격이 컸다. 배도 컸다. 하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은 조용했다. 물고기를 다루는 사람은 소리를 줄일 줄 안다. 새벽 시장에서 생선과 가격과 인간성을 동시에 상대해본 사람의 걸음이었다.

춘삼은 온탕 앞에 서서 물을 한 번 봤다.

“사장님.”

두식이 고개를 돌렸다.

“예.”



“탕이 오늘 비린내는 안 나는데, 의지가 약합니다.”



두식의 눈썹이 꿈틀했다.

“생선 하시는 분이 탕 의지를 논하십니까.”

춘삼은 수건을 접으며 말했다.

“물은 다 압니다.”

“뭘 압니까.”

“자기가 지금 어디로 흐르는지.”

두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짜증날 정도로 좋은 말이었다.

그때 두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엄복근.

47세. 동네 헬스장 관장.

하지만 그의 헬스장은 작년 겨울 문을 닫았다. 지금은 ‘홈트 지도 및 닭가슴살 철학 상담’을 한다.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근육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단백질이 늦을 뿐.”

복근은 목에 빨간 스포츠타월을 걸고 있었다. 팔뚝은 굵었고, 표정은 더 굵었다. 그는 탕 앞에 서서 물을 보더니 갑자기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이 탕은 코어가 무너졌습니다.”



두식이 물었다.

“탕에 코어가 어딨습니까.”

복근은 손가락으로 물 중앙을 가리켰다.

“중심이 없습니다. 물이 오른쪽으로 도망갑니다.”

춘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도 죽기 전에 한쪽으로 눕습니다.”

두식이 둘을 번갈아 봤다.

“지금 두 분이 목욕하러 오신 겁니까, 탕 장례식 보러 오신 겁니까.”

그때 세 번째 남자가 들어왔다.

도끼봉.

61세. 전직 아파트 경비반장.

그는 목욕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방은 군용 느낌이 났고, 안에는 샴푸, 면도기, 때밀이장갑, 그리고 이상하게도 작은 수평계가 들어 있었다.

도끼봉은 아무 말 없이 탕 앞에 섰다. 그리고 목욕가방에서 수평계를 꺼내 탕 가장자리 타일 위에 올렸다.

두식이 물었다.

“그건 왜 갖고 다니십니까.”

도끼봉이 대답했다.



“세상은 기울어져 있습니다.”



“예?”

“확인해야 덜 당합니다.”

수평계 안의 기포가 살짝 오른쪽으로 쏠렸다.

도끼봉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탕, 오른쪽이 무겁습니다.”

두식은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남자 셋이 새벽 5시에 온탕 앞에서 각자 전문 분야로 탕을 진단하고 있었다. 생선도매상은 물의 의지를 말하고, 전직 헬스장 관장은 코어를 말하고, 경비반장은 수평계를 꺼냈다.

상식적으로는 모두 돌려보내야 했다.

하지만 두식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탕이 진짜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사람이 맞는 말을 할 때 가장 크게 흔들린다.

두식은 팔짱을 꼈다.

“좋습니다.”

세 남자가 동시에 두식을 봤다.

두식이 낮게 말했다.

“왕대야 사우나 임시 비상대책반을 소집합니다.”

춘삼이 수건을 고쳐 멨다.

“직책은요.”

“마춘삼 선생님은 수류 감별관.”

춘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의 눈을 보겠습니다.”

두식이 복근을 봤다.

“엄복근 선생님은 탕체 균형 고문.”

복근이 목을 돌렸다.

“중심 잡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끼봉을 봤다.

“도끼봉 선생님은 수평 및 질서 담당.”

도끼봉은 수평계를 들어 올렸다.

“기울어진 것은 바로잡습니다.”

두식은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쳤다.

“저는 총괄입니다.”

춘삼이 물었다.

“작전명은요.”

두식은 온탕을 바라봤다.

거품은 여전히 오른쪽 구석으로 모이고 있었다.

보글.

딱.

보글.

딱.

두식이 천천히 말했다.

“작전명, 푸른 바가지.”

남탕 입구 선반 위에는 파란색 바가지가 하나 있었다.

다른 바가지들과 달리 그 바가지는 손잡이에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오래된 물건이었다.

 

이름은 청룡 7호였다.

 

두식이 붙인 이름이었다.

청룡 7호는 왕대야 사우나의 상징이었다.

누군가 머리를 감을 때도, 누군가 찬물을 끼얹을 때도, 누군가 인생을 잠깐 리셋하고 싶을 때도 청룡 7호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손잡이가 한 번 부러졌지만 검은 테이프로 살아났고, 바닥에 금이 갔지만 아직 물을 담았다.

두식은 청룡 7호를 집어 들었다.

“이 바가지는 12년 동안 여기 있었습니다.”

복근이 진지하게 물었다.

“전역 안 시킵니까.”

두식이 대답했다.

“본인이 거부합니다.”

춘삼은 고개를 숙였다.

“물건에도 자존심이 있죠.”

도끼봉은 청룡 7호를 보며 낮게 말했다.

“손잡이가 버틴 얼굴입니다.”

두식은 바가지에 온탕 물을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부었다.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네 남자가 동시에 바라봤다.

물은 똑바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꺾였다.

춘삼이 말했다.

“흐름이 배신했습니다.”

복근이 말했다.

“골반이 틀어진 겁니다.”

도끼봉이 말했다.

“타일 아래가 의심됩니다.”

두식은 턱을 만졌다.

“하지만 어제까진 멀쩡했습니다.”

춘삼이 탕 오른쪽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손바닥으로 물을 훑었다. 마치 광어의 등지느러미를 보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여기입니다.”

두식이 다가갔다.

“뭐가요.”

“물이 여기서 겁을 먹습니다.”

복근이 바로 옆에 앉았다.

“겁먹은 물은 어깨가 올라갑니다.”

두식이 말했다.

“물에 어깨가 어딨습니까.”

복근은 단호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을 우습게 보는 겁니다.”

도끼봉은 탕 모서리 배수구 쪽을 봤다.

그곳에는 작은 고무마개가 있었다.

평소에는 탕 바닥 구멍을 덮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고무마개 한쪽이 아주 살짝 들려 있었다. 너무 작아서 보통 사람은 못 본다. 하지만 경비반장 출신 도끼봉은 봤다. 그는 20년 동안 아파트 현관 자동문이 사람을 무시하는 각도를 봐온 남자였다.

“이놈입니다.”

도끼봉이 고무마개를 가리켰다.

두식이 손전등을 비췄다.

정말이었다.

검은 고무마개 한쪽 아래에 무언가 끼어 있었다.

작고 하얀 물체.

춘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비늘?”

복근이 말했다.

“아닙니다. 단백질 조각 같습니다.”

도끼봉이 집게로 그것을 집어 올렸다.

그것은 비누 조각이었다.

하지만 그냥 비누 조각이 아니었다.

 



사우나 매점에서 파는 백호 알로에 비누의 모서리였다.

 

 

누군가 쓰다가 떨어뜨린 작은 비누 조각이 고무마개 아래 끼어, 물 흐름을 미세하게 바꾸고 있었다. 그 틈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며 거품이 오른쪽으로 몰리고, 작은 딱 소리가 났던 것이다.

두식은 비누 조각을 바라봤다.

크기는 손톱만 했다.

하지만 지난 한 시간 동안 온탕의 품격을 무너뜨린 범인이었다.

두식이 낮게 말했다.

“이 작은 백호가 왕대야의 심장을 물고 있었군.”

춘삼은 고개를 저었다.

“작은 놈이 제일 독합니다. 멸치도 국물은 지가 다 냅니다.”

복근은 팔짱을 꼈다.

“근육도 작은 부위가 무너지면 자세가 갑니다. 특히 중둔근.”

두식이 물었다.

“중둔근이 뭡니까.”

복근이 말했다.

“남자가 잃고 나서야 찾는 근육입니다.”

도끼봉은 비누 조각을 휴지 위에 올려놓았다.

“증거물 확보.”

두식은 고무마개를 다시 눌렀다.

꾹.

딸깍.

탕 안의 거품이 흩어졌다.

오른쪽으로 몰리던 물이 천천히 균형을 되찾았다.

보글.

보글.

딱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온탕을 바라봤다.

새벽 사우나의 형광등 아래, 성인 남자 넷이 손톱만 한 비누 조각 하나를 제거하고 마치 국가 기반 시설을 복구한 사람들처럼 서 있었다.

그 순간 두식이 말했다.

“목욕비 안 받겠습니다.”

춘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복근이 말했다.

“우리는 대가를 바라고 움직인 게 아닙니다.”

도끼봉이 덧붙였다.

“하지만 식혜는 받을 수 있습니다.”

두식은 잠깐 침묵했다.

“좋습니다.”

그는 매점 냉장고로 걸어갔다.

냉장고 문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식혜는 차갑게, 마음은 미지근하게.”

두식은 식혜 네 병을 꺼냈다.

 

 



제품명은 장군식혜 왕건더기였다.

 

 

 

 

 

병 안에는 밥알이 너무 많았다. 거의 식혜가 아니라 젖은 볍씨 훈련소 같았다.

네 남자는 평상에 앉았다.

두식, 춘삼, 복근, 도끼봉.

가운데에는 청룡 7호 바가지가 놓였다. 왜 놓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어떤 물건은 가운데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춘삼이 식혜 병을 열었다.

뻥.

소리가 좋았다.

“이 소리죠.”

복근이 물었다.

“뭐가요.”

춘삼은 병 입구를 바라봤다.

“살아 있는 당분의 소리.”

도끼봉이 식혜를 한 모금 마셨다. 밥알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잠시 씹었다. 표정이 엄숙해졌다.

“밥알이 많습니다.”

두식이 말했다.

“그게 장군입니다.”

복근은 병을 흔들었다.

“밑에 깔린 놈들이 올라와야 합니다.”

춘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도 밑에 있는 놈이 진짜입니다.”

도끼봉은 병을 내려놓았다.

“아파트도 지하주차장이 진짜입니다.”

두식이 셋을 바라봤다.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두식이 물었다.

“다들 이 시간에 왜 오십니까.”

춘삼이 말했다.

“새벽 시장 끝나면 몸에서 바다가 납니다.”

“비린내 말입니까.”

“그건 냄새가 아닙니다. 직업의 그림자입니다.”

복근이 말했다.

“저는 새벽에 옵니다. 낮에는 예전 회원들이 알아봅니다.”

“헬스장 닫으신 거 때문에요?”

복근은 식혜를 내려다봤다.

“예전엔 제가 사람들한테 말했습니다. 한 개만 더. 버텨라. 밀어라. 포기하지 마라.”

“지금은요.”

“지금은 제가 못 밀었습니다.”

조용해졌다.

웃기게 시작한 말이 갑자기 사람의 옆구리를 찔렀다.

도끼봉이 수평계를 만지작거렸다.

“저는 집에 있으면 자꾸 현관 소리가 들립니다.”

두식이 물었다.

“경비반장 하실 때요?”

도끼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아무도 제게 안 지나갑니다.”

춘삼은 식혜를 마셨다.

두식은 가만히 청룡 7호를 봤다.

사우나 평상 위에 남자 넷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탕을 지키고.

한 명은 생선을 팔고.

한 명은 문 닫은 헬스장을 아직 마음속에서 못 내리고.

한 명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현관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두식이 말했다.

“저는 여기서 매일 사람들 벗은 등을 봅니다.”

춘삼이 고개를 들었다.

두식은 계속 말했다.

“등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얼굴은 괜찮은 척하는데, 등은 다릅니다. 굽은 등, 힘 빠진 등, 버틴 등, 포기한 등.”

복근이 낮게 말했다.

“광배가 무너진 등도 있죠.”

두식이 말했다.

“그건 선생님 분야고요.”

춘삼이 피식 웃었다.

도끼봉도 웃었다.

복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배는 중요합니다.”

두식이 식혜를 들었다.

“오늘 깨달았습니다.”

세 남자가 두식을 봤다.



“탕을 지킨다고 다 사장이 아닙니다.”



춘삼이 물었다.

“그럼요.”

두식은 청룡 7호를 들어 올렸다.

“작은 비누 조각 하나 때문에 물의 마음이 틀어지는 걸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사장입니다.”

춘삼은 식혜 병을 들었다.

“저도 오늘 깨달았습니다.”

“뭘요.”



“생선을 판다고 다 장사꾼이 아닙니다.”



“그럼요.”

“비늘 하나로 바다의 기분을 읽는 사람이 장사꾼입니다.”

복근은 수건을 목에 다시 걸었다.

“저도 깨달았습니다.”

두식이 물었다.

“뭡니까.”

복근은 자기 배를 툭 쳤다.



“복근이 없다고 복근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춘삼이 말했다.

“그건 그냥 현실 아닙니까.”

복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근육은 사라진 게 아니라 숨어 있는 겁니다.”

도끼봉은 수평계를 손바닥에 올렸다.

“저도 깨달았습니다.”

“뭘요.”



“세상은 원래 기울어져 있습니다.”



두식이 물었다.

“그럼 왜 계속 수평을 봅니까.”

도끼봉은 아주 낮게 말했다.



“완전히 바로잡으려고 보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얼마나 기울었는지 알아야 넘어질 때 덜 놀랍니다.”



그 말에 아무도 바로 웃지 않았다.

너무 진지해서 웃기고, 너무 웃겨서 조금 슬펐다.

그때 갑자기 남탕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네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냉탕 쪽에서 났다.

냉탕 옆에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가 하나 있었다. 색깔은 분홍색.

이름은 분홍장군이었다.

 

누가 이름 붙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의자가 오래전부터 왕대야 사우나에 있었고, 앉는 사람마다 이상하게 겸손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분홍장군의 다리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복근이 벌떡 일어났다.

“저건 위험합니다.”

춘삼이 말했다.

“저 의자, 사람 잡습니다.”

도끼봉은 이미 수평계를 들고 있었다.

두식은 낮게 말했다.

“2차 작전입니다.”

춘삼이 물었다.

“작전명은요.”

두식은 분홍장군을 바라봤다.

의자 다리 하나가 덜덜 떨렸다.



“작전명, 왕좌의 다리.”



네 남자는 냉탕 앞으로 이동했다.

분홍장군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다리 하나 고무패킹이 닳아 있었다. 바닥 타일과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앉는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는 구조였다.

복근이 말했다.

“이건 하체 불균형입니다.”

춘삼이 말했다.

“물고기도 지느러미 하나 상하면 똑바로 못 갑니다.”

도끼봉이 수평계를 올렸다.

“기울기 3도.”

두식이 심각하게 물었다.

“3도면 어느 정도입니까.”

도끼봉이 말했다.

“사람 마음이면 이미 삐진 각도입니다.”

두식은 창고에서 고무패킹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에는 매직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의자발 예비군.”

복근이 상자를 보고 물었다.

“예비군이면 소집 가능한 겁니까.”

두식이 말했다.

“전쟁은 늘 바닥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분홍장군을 뒤집었다.

의자 밑바닥이 드러났다.

남자 넷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 밑바닥을 봤다.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데 뒤집어보면 한쪽 다리가 닳아 있다. 누가 오래 앉았는지, 어디서 버텼는지, 어떤 무게를 감당했는지 밑바닥에 다 남는다.

두식이 낡은 패킹을 빼냈다.

뽁.

작은 소리였다.

춘삼이 말했다.

“마지막 숨 같았습니다.”

복근이 새 패킹을 끼웠다.

꾹.

도끼봉이 수평계를 올렸다.

기포가 가운데로 왔다.

도끼봉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평입니다.”

두식이 물었다.

“정말입니까.”

“수평입니다.”

춘삼이 분홍장군을 바로 세웠다.

복근이 조심스럽게 앉았다.

의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복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버팁니다.”

두식은 주먹을 쥐었다.

“분홍장군 복귀.”

춘삼은 낮게 말했다.

“체크 - 메이트”

도끼봉은 수평계를 닦았다.

“살아 있는 곳에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네 남자는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다.

식혜는 조금 미지근해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새벽에 함께 의자 다리를 고친 남자들은 미지근한 식혜쯤은 받아들인다.

두식이 말했다.

“목욕하고 가십쇼.”

춘삼이 수건을 풀었다.

“오늘은 오래 담가야겠습니다.”

복근이 말했다.

“온탕 10분, 냉탕 30초, 반복 3세트.”

도끼봉이 말했다.

“무리하지 마십쇼. 사람은 타일보다 약합니다.”

두식은 청룡 7호를 들고 온탕 물을 한 번 끼얹었다.

촤악.

물소리가 남탕 안에 울렸다.

춘삼이 온탕에 들어갔다.

“아.”

그 한마디에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생선 비린내, 새벽 시장의 흥정, 얼음박스의 무게, 집에 가도 바로 잠들 수 없는 피로.

복근도 들어갔다.

“코어가 돌아옵니다.”

도끼봉은 천천히 발부터 담갔다.

“수평 유지.”

마지막으로 두식이 들어왔다.

네 남자는 온탕 안에 나란히 앉았다.

아무도 서로의 몸을 보지 않았다. 그건 예의였다. 중년 남자들의 브로맨스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아는 데서 시작된다.

탕은 조용했다.

거품은 더 이상 오른쪽으로 몰리지 않았다.

물이 네 사람의 어깨까지 올라왔다.

두식이 말했다.

“물은 참 이상합니다.”

춘삼이 물었다.

“뭐가요.”



“다 벗고 들어오게 만듭니다.”



복근이 말했다.

“그래서 공평하죠.”

도끼봉이 덧붙였다.

“하지만 배는 숨길 수 없습니다.”

복근이 단호하게 말했다.

“배는 현재가 아닙니다. 누적입니다.”

춘삼이 말했다.

“생선도 배를 보면 압니다.”

두식이 말했다.

“그만합시다. 여기서 배 얘기는 위험합니다.”

네 사람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젊은 웃음이 아니었다.

크게 터지는 웃음도 아니었다.

온탕 물 위에 살짝 뜨는 거품 같은 웃음이었다. 금방 사라지지만, 분명히 있었던 웃음.

잠시 후 춘삼이 말했다.

“사장님.”

“예.”

“오늘 탕이 돌아왔습니다.”

두식은 물을 바라봤다.

“혼자서는 못 봤을 겁니다.”

복근이 말했다.

“사람도 혼자 운동하면 자세 틀어진 줄 모릅니다.”

도끼봉이 말했다.

“혼자 살면 마음이 기운 줄도 모릅니다.”

춘삼이 말했다.

“혼자 장사하면 내가 비린 건지 세상이 비린 건지 모릅니다.”

두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 명이 필요했군요.”

복근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두식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물 보는 사람.”

춘삼.

“중심 보는 사람.”

복근.

“기울기 보는 사람.”

도끼봉.

“그리고 돈 받는 사람.”

두식.

세 남자가 동시에 두식을 봤다.

두식이 말했다.

“농담입니다.”

춘삼이 말했다.

“반쯤 진심이었습니다.”

두식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청룡 7호가 탕 가장자리에서 미끄러졌다.

툭.

바가지가 물 위에 떨어졌다.

뒤집힌 채 둥둥 떠다녔다.

네 남자는 그걸 바라봤다.

복근이 말했다.

“전복됐습니다.”

춘삼이 말했다.

“배라면 이미 끝났습니다.”

도끼봉이 말했다.

“아직 뜹니다.”

두식은 손을 뻗어 청룡 7호를 바로 세웠다.

바가지는 물을 담았다.

두식이 말했다.

“뜨는 놈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춘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앉아야 진짜입니다.”

복근이 말했다.

“아니요. 가라앉기 전에 코어 잡아야 합니다.”

도끼봉이 말했다.

“가라앉아도 바닥이 수평이면 괜찮습니다.”

두식은 세 사람을 바라봤다.

“다들 말이 이상한데 틀리진 않네요.”

그날 새벽, 왕대야 사우나에서는 큰 사건이 없었다.

온탕의 고무마개 밑에서 백호 알로에 비누 조각이 제거됐고, 분홍장군 의자 다리에는 새 고무패킹이 끼워졌고, 청룡 7호 바가지는 잠깐 전복됐다가 다시 물을 담았다.

그리고 네 명의 남자는 각자 조금씩 덜 기울어진 채 탕에서 나왔다.

춘삼은 몸에서 바다를 조금 덜 풍겼다.

복근은 사라진 근육이 아직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믿게 됐다.

도끼봉은 수평계 없이도 잠깐 평평한 기분을 느꼈다.

두식은 왕대야 사우나가 그냥 목욕탕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알았다.

그곳은 사람들이 더러운 걸 씻으러 오는 곳이 아니었다.

자기 몸이 아직 따뜻한지 확인하러 오는 곳이었다.



새벽 6시 22분.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남자 셋은 각자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춘삼은 수건을 어깨에 걸쳤다.

“사장님, 오늘 물 좋았습니다.”

두식이 말했다.

“선생님이 물의 눈을 봐주신 덕입니다.”

복근은 빨간 스포츠타월을 목에 걸었다.

“분홍장군, 하체 좋아졌습니다.”

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덕에 재활 성공했습니다.”

도끼봉은 목욕가방에 수평계를 넣었다.

“사장님.”

“예.”

“탕은 괜찮습니다.”

두식이 물었다.

“사람은요.”

도끼봉은 잠깐 생각했다.

“오늘은 덜 기울었습니다.”

그 말에 네 남자는 서로를 봤다.

따로 악수하지 않았다.

그런 건 너무 젊은 방식이었다.

대신 두식은 청룡 7호로 바닥에 물을 한 번 뿌렸다.

촤악.

그것이 왕대야 사우나식 인사였다.

춘삼이 나갔다.

복근이 나갔다.

도끼봉이 나갔다.

남탕에는 다시 두식 혼자 남았다.

그는 온탕을 바라봤다.

물은 고요했다.

열받은 김대리는 41도를 가리켰다.

정상.

이번엔 숫자뿐 아니라 마음도 정상이었다.

두식은 벽 안내문 아래에 새 종이를 붙였다.

“비누 조각을 얕보지 말 것.”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 더 적었다.

“남자도 작은 데서 막히면 전체가 이상해진다.”

그는 멀찍이 물러나 문장을 바라봤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약간 미쳤다.

하지만 목욕탕 사장은 원래 약간 미쳐야 한다. 매일 남의 양말과 수건과 등을 보면서 정상으로만 살 수는 없다.

두식은 청룡 7호를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분홍장군은 냉탕 옆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백호 알로에 비누 조각은 휴지에 싸여 쓰레기통으로 갔다.

그 작은 놈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식은 알고 있었다.

오늘 왕대야 사우나의 새벽을 흔든 것은 보일러도 아니고, 수압도 아니고, 타일도 아니었다.

손톱만 한 비누 조각.

낡은 의자 다리.

기울어진 마음.

그리고 그걸 지나치지 못한 남자 넷.

인생은 가끔 온도는 맞는데 마음이 안 데워진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오른쪽 구석으로 거품이 몰린다. 누군가 보기엔 별일 아니지만, 본인에게는 하루 전체가 이상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대단한 위로가 아니다.

수류 감별관 하나.

탕체 균형 고문 하나.

수평 및 질서 담당 하나.

그리고 식혜 네 병을 꺼내줄 미친 사장 하나.

남자는 그렇게 다시 돈다.

씻기고, 데워지고, 식고, 또 들어간다.

왕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

대야 하나 붙잡고 버티면 된다.

새벽 6시 31분.

간판의 꺼졌던 ‘왕’ 자가 갑자기 깜빡이더니 다시 켜졌다.

왕대야 24시 불가마 사우나.

두식은 계단 위 간판 불빛을 보고 낮게 말했다.

“돌아왔군.”

그리고 남탕 안쪽에서, 청룡 7호 바가지가 아무 이유 없이 한 번 미끄러졌다.

툭.

두식은 고개를 돌렸다.

“너도 아직 현역이냐.”

바가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을 담을 준비는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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