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휴게소 남자화장실 앞은 습기가 가득했고 애매한 온도로 붐볐다.
뜨거운 국물 냄새, 엔진 열기, 세정제 향이 뒤섞여 “여긴 잠깐 멈추는 곳”이라는 표지판 같은 공기가 깔려 있었다.
그 한복판, 남자화장실 출입문 바로 옆에 작은 간이대가 있었고, 그 위에 큼지막한 문구가 박혀 있었다.
“남자의 자존심. 영월 왕 알땅콩 꿀타래”
그리고 그 아래, 더 잔인하게 단정한 글씨.
오늘이야말로 1개 10,000원.
간판만 보면 꿀타래가 아니라… 무슨 결심을 파는 느낌이었다.
판매자는 간판을 배신하지 않았다.
사장님 박방울 (40세 초반)
보디빌더 체형에 어깨가 딱 벌어졌고, 카우보이 스키니진에 멜빵을 걸쳤다.
웃통은 벗고있으면서도 바지를 흘러내리지않게 타이트하게 잡아주는 멜빵은 어쩌면 책임감일테다.
신발은 카우보이부츠였다.
몸은 말 대신 땀이 먼저 설득하는 타입. 팔뚝엔 꿀이 아니라 철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때, 45세 대형트럭 기사 오기통씨가 남자화장실 문을 밀고 나왔다.
세면대에서 물로 얼굴을 한 번 후려친 사람 특유의 맑은 피곤함이 얼굴에 붙어 있었다. 그는 손을 털다가 간판을 보고 멈췄다.
“남자의… 자존심?”
그 말이 목에서 나오는 순간, 박방울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강렬했다.
“형님, 자존심은… 씹는 게 아닙니다.”
오기통 씨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휴게소에서 웃으면, 이상하게 자기 인생이 들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럼 뭡니까.”
“버티는 겁니다.”
방울 사장은 꿀타래 한 뭉치를 들어올렸다. 겉은 고급스럽게 윤이 났고, 속에는 알땅콩이 묵직하게 숨어 있었다. 고급이라기보다— ‘완강’했다.
오기통 씨는 사 먹진 않았다. 만 원짜리 자존심은… 오늘도 충분히 싣고 다녔으니까.
대신 그는 가까이 서서, 방울 사장의 손동작을 봤다. 꿀이 늘어나고 접히고 쪼개지는 그 리듬이 묘하게 트럭 와이퍼처럼 규칙적이었다.
“사장님, 왜 여기서 이걸 파세요.”
방울 사장은 잠깐 멈췄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
“운동도. 장사도. 인생도. ‘오늘은 그냥 쉬자’ 그 말이 제일 무서웠어요.”
그 말에 오기통 씨는 어깨가 아주 살짝 내려앉았다.
그도 아는 말이었다. 운전대 잡는 사람은 ‘쉬자’라는 말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고, 또 그 달콤함이 다음 날 얼마나 잔인해지는지도 안다.
방울 사장이 오기통 씨를 슬쩍 보더니, 갑자기 멜빵바지 아래에서 벨트를 풀었다. 가죽 벨트였다. 딱딱하고 오래된, 묘하게 믿음직한 벨트.
“형님.”
“왜요.”
“달려봅시다.”
오기통 씨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뭘요.”
브랜드 없는 가죽 벨트를 오기통 씨 손에 쥐여줬다.
낡은 벨트에서는 손바닥에 가죽 냄새가 박혔다.
“저를요.”
“……여기서요?”
“여기잖아요. 휴게소잖아요. 인생은 늘… 남자화장실 앞에서 시작됩니다.”
말이 너무 당당해서, 오기통 씨는 반박을 잃었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진짜로 ‘조심스럽게’ 벨트를 들어올렸다.
찰싹!
가죽이 방울 사장의 등에 닿는 소리가 휴게소 바닥에 납작하게 퍼졌다.
방울 사장은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외쳤다.
“임금님이 드시던 명품!”
찰싹!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맛!”
찰싹!
“한가닥이요!”
찰싹!
“윽.. 두가닥이요!”
찰싹!
“네가닥이요!”
찰싹!
“허업! 여덟가닥이요!”
오기통 씨는 어느새 벨트를 흔드는 팔에 리듬이 생겼다.
그 리듬이 이상하게… 트럭의 긴 야간운전과 닮아 있었다.
‘계속 가야 한다’는 박자. 멈추면 무너진다는 박자.
방울 사장은 동시에 꿀을 늘렸다. 늘이고 접고, 늘이고 접고,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숨을 고르고, 또 늘였다.
반죽이 아니라, 어떤 약속을 치대는 손 같았다.
찰싹!
“열여섯가닥이요!”
그 뒤로 숫자는 말이 아니라 주문이 됐다.
꿀이 얇아질수록 방울 사장의 목소리는 더 선명해졌고, 오기통 씨의 팔은 더 묵직해졌다.
가닥이 가닥을 낳고, 가닥이 다시 가닥을 낳았다.
마치 “버틴 하루”가 “버틴 일 년”이 되고, “버틴 일 년”이 “버틴 인생”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방울 사장이 땀에 젖은 숨으로 말했을 때, 오기통 씨도 같이 숨을 삼켰다.
“흐읍.. 16,384가닥이요...!”
그 순간, 꿀타래는 더 이상 간식이 아니었다.
손바닥 위에 놓인 건, 수천 번의 접힘과 수천 번의 견딤이 만든 작은 덩어리였다.
방울 사장 어깨에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고, 오기통 씨 손의 가죽벨트는 조용히 축 늘어졌다.
둘은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휴게소의 소음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안에 작은 고요가 한 칸 생겼다.
사내들의 고요. 설명하지 않는 대신, 눈으로만 확인하는 고요.
그때였다 주변 사람들의 환호성이 멈출 수 없이 터져나왔고
그 꿀타래를 너도나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손움직임은 주머니 지갑까지 향했다.
오기통 씨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방울 사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 웃음은 자랑이 아니라… 인정에 가까웠다.
노을이 휴게소 유리창에 걸려, 주황빛이 바닥에 길게 누웠다.
두 사람의 땀 냄새, 꿀의 단내, 가죽의 마른 냄새가 섞여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짧은 멈춤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달리던 두 사나이가 같은 방향을 잠깐 바라봤다.
다시 각자의 운전대로, 각자의 내일로 돌아갈 걸 알면서도—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달렸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노을은 조용히 내려앉고,
16,384가닥의 꿀타래는 그 작은 간이대 위에서
마치 사내들의 의리처럼— 굵고 단단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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